세종대왕 훈민정음 이전 | 우리말 사용 역사와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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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에도 우리 조상들은 고유한 우리말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글자가 없어 중국의 한자를 빌려와 우리말의 소리와 뜻을 표기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중국말을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우리말 구조를 한자에 얹어서 소통했습니다.
고유한 우리말의 뿌리와 존재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아득한 고대부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독자적인 말과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타이语 계통에 속하는 우리말은 만주어나 몽골어와 뿌리를 같이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입으로 주고받는 구어 형태의 언어는 세대와 세대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글자가 없었다는 점이 곧 말을 쓰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자를 빌려 쓰던 차자 표기법
우리말은 존재했으나 이를 기록할 고유의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를 가져다 썼습니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 문장을 적는 향찰이나 이두 같은 독창적인 표기 방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중국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니라 우리말 어순에 맞춰 한자를 배열했습니다. 백성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을 한자로 표기하느라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지배층과 일반 백성의 소통 맥락
조선 시대 지배층인 양반들은 한자를 익혀 공문서를 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반면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던 일반 백성들은 오로지 말로만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한자는 배우기 너무 어려워 평범한 백성들이 일상생활에 쓰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았습니다. 글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언어적 격차가 매우 컸던 시대였습니다.
중국말과 우리말의 구조적 차이점
중국어는 성조가 존재하고 단어의 순서가 고정된 고립어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말은 조사와 어미가 발달하여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교착어의 특징을 가집니다. 조상들은 중국말을 그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의 문법 체계를 굳건히 유지하며 살아왔습니다. 다만 기록을 남길 때만 중국의 문자 체계를 빌려왔을 뿐입니다.
한자 차용 과정에서 흔히 생기는 오해
훈민정음 이전에는 우리말이 아예 없고 중국어를 번역해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언어학적으로 우리말은 독자적인 역사를 지닌 고유 언어로 발전해 왔습니다. 한자는 사상을 기록하고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수입되어 활용되었을 뿐입니다. 우리말이 중국말에 완전히 흡수된 적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과 문자의 분리가 가져온 한계
입으로는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글로 적지 못하는 불편이 이어졌습니다. 어려운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억울한 일이 있어도 글로 호소하기 어려워 답답함을 겪었습니다. 이처럼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은 문화적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로 결심한 가장 큰 배경이 되었습니다.
함께 알아두어야 할 문자 창제 배경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고 편하게 글을 익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말은 통하지만 글이 없어 법을 몰라 피해를 보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은 소리를 그대로 적을 수 있는 과학적인 원리로 설계되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언어생활에 큰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이후 달라진 언어생활의 지점
한글이 보급된 이후 백성들은 자신의 감정과 정보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양반들의 반대가 심해 정식 공문서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나 민간에서는 빠르게 퍼졌습니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온전히 적을 수 있게 되면서 독자적인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풍부한 어휘와 문장을 누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에도 우리 조상들은 고유한 우리말을 썼으며 글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표기했습니다. 한글의 창제 과정과 세부 역사에 대해서는 국립한글박물관 누리집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와 우리말의 어순과 문법에 맞게 적었던 고대의 독창적인 표기 방식입니다.
한자로 쓰인 역사서나 불경 등 서적은 존재했으나 모두 지배층 전용이었습니다.